우연히..
버스 옆자리에 앉으신 나이 지긋한 아버님이 손전화를 꺼내시는데
전화 화면에 '그 분' 사진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마음이 편해지는 얼굴.
마음이 편해지는 얼굴.......정말 흔하지 않죠?
나도 그런 얼굴이길 늘 소망하고 있다.
내가 영광스럽게도 그 분을 직접 뵌 적이 있다.
수련의 시절,
우리 의국에서는 토요일마다 순번을 정해
시흥에 있는 전진상이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진료소에서 피부과 진료를 맡아서 했다.
사명이나 책임보다는
의례, 원래 해야한다니 아무 생각없이 내 차례가 되면 가서 진료를 보곤 했다.
토요일, 연건동 대학병원에서 업무를 끝내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시흥 '큰 은행나무' 종점에서 내려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전.진.상'을 찾아가는 길은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였다.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전진상.
사실, 무료 진료소라는 곳이라 쾌쾌하고 허름한 간이시설을 생각했지만
전진상은 '따뜻한' 2층 집이었다.
1층에 약국이 있고 살림집을 개조한 2층 여러방을 진료실로 쓰고 있었는데
처음 들어간 나를 봉사자 분들과 '배 선생님'이 맞이하셨다.
배 선생님은 외국인이셨는데 넉넉한 몸집에 온화한 동네 아줌마 같은
편한 분으로 우리나라가 좋아서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고 계속 봉사를 하며 살고 계신 분이었다.
대부분의 내과 환자는 배 선생님이 보시고
전문과목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과별로 배정된 날짜에 오게 해 진료를 보는 식이었다.
내 차례는 한달에 한번 꼴로 돌아왔는데
가는 길이 고되고, 황금같은 주말에 시간을 내야했지만
거기 갔다 오는 길,
난 항상 즐거운 마음이 되었다.
처음엔 감정이 복 받쳐 울기도 몇 번 했다.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 곳에서 느끼는 따뜻한 마음과 작은 것에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무미건조한 내 생활에는 진정 오아시스 였다.
1년 동안 진료 봉사를 마무리하는 행사가 12월에 열렸다.
전진상 식구들이 마련하는 일종의 잔치인데
그동안 수고했다고 꼭 와달라 하시는 배 선생님 부탁이 미안하고 무안했다.
추운 겨울 날, 또 2시간 넘게 걸려서 전진상에 들어서니
커다란 방에 정성스레 준비한 밥상이 근사하게 차려져 있었다.
이걸 준비하려고 애썼을 전진상 식구들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더 들었다.
잔치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무르 익을 무렵,
모두들 술렁거리며 누군가 오셨다는 말을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그, 분.
바로 김 수환 추기경이었다.
난 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 종교를 넘어서, 사상을 넘어서, 어떤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
그 분을 뵙는 순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김 수환 추기경이 손수 주신 '감사패'
감사패를 받으며 그 분의 손을 잡았을 때,
내게 "수고 했어요. 고맙습니다." 말을 해 주셨다.
내가 한 일이, 과연 그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그런 가치 있는 일이었을까?
아니다.
내가 배운 건 그게 아니다.
늘,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내 탓이다' 하며 나를 먼저 돌이켜보는 마음.
김 수환 추기경.
시대를 걸쳐서,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보여주신
그 분을 오늘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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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해지는 얼굴...아무나 될수 없는것 같아요..